2023. 2. 26. 이야기를 잇는 상점 일곱과 여덟 번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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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쓰던 물건을 이어서 쓰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새로운 걸 사는 걸 좋아하지만 새로운 것이 꼭 새 것일 필요는 없다. 내 첫번째 '명품'백도 빈티지 제품이고, 지금 타는 차도 폭스바겐 사에서 나온 2004년식 뉴비틀이다. 곧 차를 바꿀 예정인데, 이번에도 중고차를 살 예정이다. 새 제품을 살 만한 경제적 능력이 안되어서 빈티지에 눈을 돌린 것인지는 가끔 헷갈린다. 빈티지가 훨씬 비싼 경우도 많은데, 내가 가지고 있는 빈티지는 모두 새 제품 가격의 반의 반도 안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겨울 휴가를 가면서 함께 살고 있는 강아지 로이에게 조끼를 사주었다. 사진을7 찍어 단톡방에 보냈더니 한 친구가 "로이 조끼 빈티지한 거 샀네."라고 했다. 역시 함께 살며 로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이 조끼 새거 아니야? 빈티지는 중고잖아?"
아니 꼭 중고가 아니라도 빈티지하다고 표현할 수 있지. 그러니까 빈티지하다는 건.... 말문이 막혔다. '빈티지하다'의 정확한 뜻이 뭘까?
빈티지(vintage)는 본래 와인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포도가 풍작인 해에 정평이 난 양조장에서 양질의 포도로 만든 품격있는 와인에 붙여주던 라벨이라고. 좋은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맛을 잃지 않고 오히려 깊은 맛을 냈기 때문일까? 패션전문자료 사전을 보면 일정한 기간을 경과해도 광채를 잃지 않는(가령 한 때는 광채를 잃어도 어떤 계기로 돌연 불사조와 같이 되살아나느 매력을 가진) 어떤 특징의 두드러진 유행 또는 유행품을 가리킨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오래 되어도 가치 있는 것(Oldies but Goodies) 혹은 오래 되어도 새로운 것(New-Old-Fashioned)을 의미한다고. 그래서 빈티지한 것이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고, 누가, 어떤 시대에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할머니가 입을 것 같은 촌스러운 원피스가 '그래니룩'이라 불리는 패션 아이템이 되는 것처럼.
오늘은 그렇게 오랜 세월 간직하고 싶은 '빈티지'한 멋을 뽐내주었으면 하는 가방 몇개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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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는 셀린느 마카담에 꽂혀있었다.... 가격은 40만원 중반대였던 것 같다. 가로 37센티, 세로 27센티정도로 큰 사이즈라 더 마음에 들었다.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가 충분히 들어갈 정도. 도쿄 유즈드에서 구매. (https://m.tokyous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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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거는 버버리! 25만원이었던 걸로 기억. 세월의 흔적이 가장 많이 보이는 제품이다. 군데군데 많이 긁혀있고, 핸들은 원래의 것이 아니고 새롭게 단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친구들이 예쁘단 말을 제일 많이 한 아이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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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은 빈티지제품도 정말 비싸고 또 평소 내가 즐겨입는 옷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그닥 관심이 없던 브랜드다. (저..정말로.... ) 그런데 또 우연히! (나에게는 왜 자꾸 이런 우연이 생기는건지!) 샤넬 서프백을 발견하고는...그냥 내 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왜? 도대체 왜?) 그리고 사실 이 가방은 지금 달아놓은 것 같은 키링을 맘껏 달기에 딱 적당할 것 같아서 샀다. 샤넬백을 키링 달려고 사다니....??? 흠... 내가 구입한 서프백은 150만원정도로 샤넬백 중에서는 정말정말 저렴한 축에 속한다. 구구스에서 구매. (https://m.gugu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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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야기가 좋다. 내 가치관과 상식 선에서 이해못할 행동을 한 사람이라도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가 되곤 한다. 물론 오히려 더 화가 나는 경우도 있지만.... 드라마에서 흔히 '세상에 그만한 사연없는 사람이 어딨냐'고 할 때 그 '사연'이란 각자가 가진 이야기로 바꿔 말할 수 있다. 비슷한 사연이 넘쳐날지라도 결국엔 다 다른 이야기인 이유는 다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빈티지한 물건이란 이러한 다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전에 이 가방을 매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일까, 내부가 깔끔한 걸 보니 많이 아꼈나보다, 몇명의 주인들을 거쳤을까, 같은 것들을 상상하며 한번씩 유심히 살펴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이 가방은 새 제품보다 저렴하게 구매한 중고(second hand)가 아니라 오래 되어도 가치있고 새로운 '빈티지'가 된다.
혹시 지금 가지고 있는 가방을 판매하게 된다면 가방 속 깊숙히 어딘가에 나의 이야기를 넣어두고 싶다. 이 가방을 들고 첫 전셋집을 계약했어요, 잔뜩 멋을 부리고 연희동에 가고싶은 날에는 꼭 이 가방을 메곤 했어요, 당신에게도 이 가방과 함께 한 즐거운 이야기가 많이 생기기를요, 하고.
최근에 읽은 책, '브랜드로부터 배웁니다'(저자 김도영)에 윤여정 배우가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에서 했던 말이 인용되어 나왔다. 윤여정 배우님은 이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겠지만 빈티지를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이것만큼 완벽한 것이 없어보였다.
"인생은 누더기야. 죽을 때까지 새 옷 입고 가겠다는 심보는 대체 어디서 나는거니."
[참고한 자료]
매일경제 빈티지의 정확한 의미 [빈티지 패션] https://www.mk.co.kr/news/all/5999665
네이버 패션전문자료 사전 https://terms.naver.com/list.naver?cid=42822&categoryId=42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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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친해질 필요 없어
#혼자 놀아도 재밌어
개는 종별로 두드러진 성격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마다 성격이 다 다른 것처럼 강아지도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로이는 오해를 많이 받는 편이다. 리트리버이긴 하지만, 진돗개의 성격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강아지들과 처음 친해진 후 강아지섬에서 하염없이 친구들을 기다리는 이 녀석을 보고있자니 짠해서 계속 친구들을 만나게 했었는데, 특정 강아지 종만 보면 그렇게 짖어댔다. 처음엔 냄새 맡으러 조심히 다가갔다가 갑자기 짖어서 목줄을 부여잡은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훈련사들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반려견의 친화력을 키우기 위해 억지로 친구를 만들어 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예민한 친구들은 여러 냄새를 맡다가 친구를 만나 자연스럽게 친구를 만들 수도 있고, 또 굳이 친구가 없어도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한다. 그 방송을 보고난 뒤, 로이에게 억지로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밖에 굳이 친구가 없어도, 술먹고 들어온 나를 친구로 생각할게 뻔하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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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 산책하셔야 할 것 같아요
어딜 가도 마찬가지겠지만, 항상 텃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로이와 함께 월드컵공원 반려견 운동장을 처음 간 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주차장에 도착했다. 로이가 다른 강아지들과 뛰어놀고, 한껏 노즈워크를 하고, 부메랑을 날리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그 꿈은 반려견 운동장에 들어간지 5분도 채 안 되서 산산조각났다.
견주들이 으레 하듯이 주변을 탐색하게 하고, 냄새를 맡고, 차근차근 두개의 문을 열고 반려견 운동장에 들어갔는데, 로이를 처음 본 친구들이 로이에게 공격적인 환대를 했다. 낯선 강아지와 함께 해본 적이 별로 없는 로이는 친구들의 격한 환대에 당황을 했고, “저리 가!!!!!!!!!!!!!!!!!!!”라는 시그널을 앞세우며 짖어댔다. 내 반려견 로이가 먼저 짖은 것도 아니고, 그 개 들이 먼저 성질을 냈는데, 한 말라뮤트 반려인이 와서, “이름이 뭐에요? 로이에요? 로이는 죄송한데 나가서 산책하셔야 할 것 같아요.”라고 첫 인사를 건냈다. 이미 반려견 운동장은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었고,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반려견들끼리도 친하기 때문에 강아지를 풀어놓고 각자 핸드폰을 하던가 자기들끼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같이 처음 반려견 운동장에 발을 들인 사람들은 반려견들이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소심하게 있다가 이 한마디를 남기면서 쓸쓸하게 발을 떼야만 한다.
“우리 애는 도대체 왜 저럴까? 좀 친해지면 안되겠니?”
학교나 유치원에서 적응 못하는 아이랑 함께 사는 부모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반려견과 함께 반려견 운동장에서 느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단순히 어미견에게 교육을 덜받은 채 내가 입양을 해와서 다른 강아지들과 친해지지 못해 발생한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진트리버 로이는 한번씩 성질을 부리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하고 친해지는게 매우 어려운 아이다 보니 더 아쉬움이 남았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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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반려견 운동장을 나와서 우리끼리 산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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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언제 취소됐어?
정릉천에는 유명한 강아지섬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정릉동에 사는 강아지의 절반은 오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특히 비가 내리고 기압이 낮아진 날 로이와 함께 산책 가면 강아지들 오줌냄새가 진동하는 그런 곳..... 하지만 이 강아지섬에서 드디어 로이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로이만큼 덩치 큰 하얀 차오차오 “애기”와 처음 친해진 이후 많은 강아지들과 친구하며 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친해진 이후 어느 일요일, 내 오전 일정으로 새벽 이슬이 채 걷히기도 전 이른 아침 산책을 하게됐다. 로이는 그날도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잔뜩 기대에 부풀어 발걸음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갈대가 무성한 강아지섬에 올라가기 직전, 로이의 엉덩이가 머뭇거리는게 느껴졌다. 아니나다를까 친구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전후좌우를 두리번 거리면서 친구를 찾는데 있을리가 있나. 일요일 오전 약속이 깨졌다는 것을 아마도 로이만 못들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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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기다렸는데 개미 한마리 보이지 않았던 정릉천 강아지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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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오는 날, 눈 오는 날, 번개치는 날, 가리지 않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산책을 하기 때문에 약속이 파토난 것을 로이만 몰랐던 경우가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로이가 강아지섬에 갈때마다 친구들을 기다리는 망부석이 되어버리는 통에 집에 돌아오는 길이 너무 험난했다. 다 어디갔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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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잇는 상점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 이야기들이 담긴 물건을 가끔씩 판매하는 곳입니다.
지금 '이상점'에는 '서로서로', '뜨ㅓ', '사부작 사부작', '개, 장소, 환대', '그 여자가 사제끼는 법' 5개의 이야기가 입점해있고, 매주 각 상점의 이야기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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