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고통이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유명한 드라마 대사처럼 사랑은 고통임을 뼈저리게 자각하는 지난 한 달이았다. 내 삶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아팠다. 감기같은 잔병치레도 잘 하지 않는 편이라 열흘넘게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아픔은 처음이다. “이달의 상점”이라는 이름으로 첫 오프라인 플리마켓을 앞두고 있었고, 준비를 위해 여름휴가 일정을 맞췄다. 매일매일 이상점에 나가서 쓸고 닦고 붙이고 자르고 첫 마켓을 위해 생각해뒀던 것들을 하나씩 실현해 나갈 예정이었다.
휴가가 시작된 주말, 일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로이와 로이오빠는 산책을 나갔고 나는 침대에서 게으르게 뒹굴거렸다. 주말에만 허용되는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맘껏 즐겼다. 띡띡띡띡띡. 번호키 소리와 함께 한없이 늘어졌던 나는 벌떡 일어나 쏟아져 들어오는 로이를 맞았다. 로이오빠는 집근처 체육센터에 헬스 등록을 해야한다며 로이를 밀어넣자마자 후다닥 나갔고, 로이 발 씻기는 김에 아예 목욕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화장실로 로이를 불렀다.
허리가 안좋은 로이오빠를 대신해 평소에도 혼자서 로이를 씻겨왔고, 또 하필 이런 일이 일어나려고 했기 때문에 로이의 심기가 불편했던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배에 물을 적시고, 앞발을 씻기고, 평소 안좋았던 오른쪽 뒷다리를 잡고 들어올리는 순간.
와아왕왕왕왕.
내 왼쪽 팔뚝을 물려버렸다. 더 많이 다치지 않으려면 물린 채로 강아지의 입을 벌리게 해야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순식간이었고, 크게 당황했으며 몇초 사이에 억지로 팔을 빼내고, 로이를 혼냈다. 왜 그래!!! 너 왜그래! 앉아, 앉아, 앉아!
간신히 진정하고 소매에 감춰둔 상처를 슬쩍 들춰보니 하얀 뼈가 보였다. 내 상처를 제대로 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로이오빠는 보자마자 울었고, 응급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상처를 보지 말라고 해주셨고 의사 선생님은 “으악!”하고 단발마의 비명을 질렀던 걸로 처참했던 상태를 설명한다.
짐승의 이빨에 물려 상처 부위가 깨끗하지 않아 바로 꼬맬 수가 없다고 했다. 너덜너덜해진 피부를 정리하느라 1차로 수술을 했다. 어깨에 놓는 마취주사는 손끝까지 전기가 통하는 듯이 찌릿찌릿하고 기분 나쁜 통증을 동반했다. 다음 날이 될때까지 손가락이 굳어서 나는 움직이려고 하는데 움직여지지 않는 감각이 괴로웠다. 시련은 계속되어 매일 아침 상처를 열고 소독약에 30분을 담그고 있어야 했고, 드디어 꿰매는 수술을 하는 날은 전신마취를 해야해서 깨고난 뒤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끙끙 앓았다.
정말이지 이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무통주사를 수시로 누르고 진통제를 맞아도 소용이 없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시간이 흐르니까, 그 시간만큼 견디니까 고통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누가 나에게 로이가 물어서 너를 이 정도로 상처입혀도 계속 로이를 사랑할 수 있냐고 미리 물었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변함없이 사랑하기는 어렵겠다고 했으려나.
해보지 않고, 겪어보지 못한 것을 굳이 너무 열심히 고민하고, 예상하는 것은 부질없다는 것을 이번 일을 겪으며 깨달았다. 더욱이 사랑은 예상할 수가 없다. 몇년 전에 가까운 사람들로 부터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 일을 당하고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대체 왜?“ 나도 몰랐다, 겪어보기 전까지는. 용서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라는 대답을 이제야 찾아서 한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을 겪고도 나는 전처럼 로이를 사랑한다.
로이같은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다면 몰랐을 고통같은 경험을 많이 했다. 예민하고 겁이 많아서 다른 강아지와 쉽게 어울리지 못해 반려견 운동장에서 쫓기듯 나온 적도 있다. 며느리 발톱한 번 깎이려면 병원 선생님들 너댓명이 달라 붙어야 하고, 유달리 큰 체격에 까만 털은 사람들에게 이유없는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왜 내 강아지는 평범하지 않을까,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사랑하는 건 이토록 평범하지 않은 너인데.
퇴원을 했지만 고톨은 끝나지 않았다. 입원해있는 동안 큰 일을 보지 못해 변비약 2번, 스타벅스 돌체라떼, 약국 관장약 3번으로도 해결이 안되어 항문외과를 다녀왔다.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싶으시면 따로 연락주….ㅅ…)
사건의 전말을 들은 한 친구는 ”이렇게 인생의 내공이 쌓이는 거지, 뭐!“라고 했는데 그말이 정답이다. 이제 나는 왠만한 수술 치료와 마취, 변비에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이걸 어떻게 해? 난 못해.“같은 범주의 일 몇개가 확 줄어들었다. 또 입원해있는 중에도 두번의 브랜딩 모임과 첫 이달의 상점을 무사히 해냈다.
로이한테 물리기 전날 홍대 길거리에서 재미삼아 해본 사주 뽑기를 했었다. “꾀꼬리가 버들가지에 깃드니 조각조각이 황금이다. 하늘과 땅에 광명이 비추고 상서로운 용이 돌아오니 귀인이 도와줄 수다. 돌을 쪼아 구슬을 만드니 수고로움이 있으면 반드시 공로를 성취한다. 사귀는 사람마다 도와주려고 하니 뚯을 품고 있는 마음이 하늘을 향해 열리어 뜻을 이루고 횡재를 만나기 되리라.” 라고 나왔다. 신빙성도 없고 우연히 뽑은 것이니 믿을게 못된다 생각하면서도 기분은 정말 좋았다. 잘 되려나봐, 더 열심히 해보자 의욕이 샘솟았었다. 다음 날 이런 사고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달의 상점을 마치고 병원에 돌아와 혼자 누우니 문득 생각이 났다. 한 쪽 팔을 움직이기 불편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이달의 상점을 괜히 강행했나하는 후회가 들 무렵이었다. 멋지게 첫 상점을 선보이고 싶었는데 맘처럼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 때 ‘귀인’들이 나타나 “왜 안돼! 지금 하면 되지! 할 수 있어!!! 이건 내가 이렇게 해볼게.” 하고 착착 해내기 시작했다. 플리마켓을 열었다는 안내와 가격표를 붙이고 진열하고 가방에 라벨을 달아주었다. 금세 그럴듯해진 이상점을 보면서 생각했다. 심심풀이 사주가 정말이었구나, 나 운수대통이구나!
내가 이 정도로 다친 것을 보고도 이상점에 오는 친구들이 로이를 안쓰러워하고 이해해주려고 했다는 것에서 또 한번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사랑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고통을 겪고 나면 한 뼘 성장한다고 하던가. 나는 지난 한 달동안 자라났다, 딱 그만큼. 그래서 더 큰 고통이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이 되었다. 사랑은 고통. 지나고 난 뒤에는 더더 큰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