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점의 이상한 이야기 ep.1
6호선에서
6호선. 쾌적하고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특히 내가 타는 시간대와 역은 더 한산해서 자리에 앉지 못한 적이 없다. 망원동으로 이사를 오니 출퇴근에 약 2시간 정도가 걸린다. 어디든 길게 오가는 게 싫어서 고등학교도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으로 갔고, 대학교는 성적순으로 가다보니 살짝 삐긋했지만 졸업 후 다닌 직장과 집의 거리는 대중교통 30분을 넘겨본 일이 없다. 그런 내가 이렇게 긴 출퇴근 시간을 감당할 수 있을까, 지레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6호선을 타고 오가는 길은 하루 중 제일 기다리는 시간이다. 6호선에 앉아있는 시간 41분.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갈수도 있지만 매일 휴대폰만 붙잡고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또, 스스로 약간 주의력결핍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산만해질 겨를없이 휴대폰만 가방에 넣어버리면 다른 것에 집중하기 정말 좋다. 6호선에서는 눕지도 못하고, 신경을 빼앗길 주변환경이 전무하므로. 하루 중 6시간은 임금 노동자로 일하고 틈틈히 디자인 외주작업을 하는데다가 이상점 기획과 운영도 하다보니 “시간이 없다”는 말이 자주 튀어나오는데 이렇게 주어진 41분은 더할 나위없이 소중하다. 뜨개를 하거나 책을 읽기도 하지만 주로 이상점 홍보 이미지를 만든다. 손쉽게 들고 다니려고 장만한 아이패드 미니가 제 몫을 톡톡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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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점 인스타그램과 뉴스레터를 만들 때 “손글씨”는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된 나만의 한 끗이었다. 깔끔하고 가독성 좋은 폰트가 많고 나 역시 디자인할 때는 그런 폰트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내 브랜드는 손으로 직접 쓰고 싶었다. 글씨쓰는 것을 꾸준히 좋아해 오고 있기도 하고, 하고싶은대로 맘껏하는 디자인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의뢰가 있어야 작업이 시작되는 디자인 분야의 특성상 의뢰인의 의견과 취향이 디자인의 방향을 좌지우지 하는 경우가 많다. 디자이너는 협업하고 싶지만 “명령”하는 고객이 훨씬 많다. 내 표현이 좌절될 때마다 언젠가는 반드시 내 마음대로! 내 눈에 제일 예뻐보이는 걸로! 디자인해야지, 하고 결심을 굳혀왔다. 내가 좋아하고 예뻐하는 것을 만들고,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하고 예뻐하는 사람들이 그걸 사준다면... 그것이 생계수단이 되어 먹고 살 수 있을만큼 팔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6호선은 그런 꿈을 실현시키는 공간이다. 펜슬을 쥐고 원하는대로 선을 그어가면서, 캔버스를 이야기로 채운다. 독서모임에 오세요, 브랜딩 공부 같이해요, 제가 만든 혹은 픽한 물건들 구경하러 오세요, 어느새 이상점 인스타그램은 다채로운 색깔들로 가득해진다. 때때로 피드를 올렸다 내렸다 들여다보면서 뿌듯해하기도 한다.
[이야기를 잇는 상점] 뉴스레터가 스물여섯번째 이야기를 끝으로 새롭게 바뀌었다.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번지르르하게 말만 늘어놓고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나 자신에게도 민망할 때였다. 완벽하게 시작하려다 영영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일단 시작하고 그 때 그 때 부족한 부분을 채우자, 마음을 먹고서 처음 시작한 것이 '뉴스레터'였다. 판매하고 싶은 것이 '이야기'였기 때문에 쇼핑몰 홈페이지가 아닌 뉴스레터를 먼저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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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작 사부작]의 산드라에게 보낸 입점제안서. 초기에는 이야기가 "있는" 상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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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는 이야기를 가진 지인들에게 “원고청탁서”가 아닌 “입점제안서”를 건넸다. 물건들을 판매하고 싶은데, 그냥 이 물건이 좋다, 예쁘다 정도로는 싫고 이야기가 담겨있었으면 했다. 물건보다 이야기가 먼저였다. 이야기를 사면 이야기가 담긴 물건을 드리는 “이야기 편집샵”에 “이야기가 있는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의 주인이 되어줄래?가 제안의 핵심이었다. 이야기는 내가 잘 아는 분야에 국한해 제안되었지만 막상 각 상점의 주인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는 내 예상 안에 있었던 적이 없다.
[뜨ㅓ]에서는 뜨개를 하는 시간을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라 표현했다. 뜨개는 동거인과 다툼이 있었을 때도 감정적인 표현을 잠시 멈추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왜 이 가방을 만들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다보니 자기 자신과 나눈 대화, 가까운 사람들과 갈등이 있을 때 해결하는 법을 말하고 있었다. [사부작 사부작]을 읽을 때는 늘 맛있는 냄새가 났다. 산드라가 어머니의 요리로 얼마나 위로를 받아왔는지도. 쉽게 뚝딱뚝딱 해내는 산드라의 음식과 살림은 산드라의 어머니를 닮았다는 걸 새삼 알게되는 시간이었다. 이 두 상점은 상점 주인들에게 새로운 생명이 찾아와 잠시 문을 닫는다. 출산과 육아때문에 하고있던 일을 모두 멈춰야 하는 건 나에게는 어쩐지 불합리해 보였다. 직장에 나가 일을 하는게 백만배 편하다는 육아의 어려움을 직접 겪은 적도, 앞으로 겪을 예정도 없는 나는 더더욱 친구들이 육아로 인해 하던 일을 멈춰야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글을 쓰는 것 같은 꽤 많은 시간과 집중을 요하는 작업은 어렵더라도 다른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고 친구들을 설득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나였다는 것을. 왜 내 맘대로 그녀들이 '멈춰'있을 거라 생각했던 건지.
[서로서로], [뜨ㅓ], [사부작사부작], [개 장소 환대], [그여자가 사제끼는 법]. 이 중 2개의 상점에 생긴 변화를 계기로 이상점 뉴스레터도 새로워질 기회를 얻었다. 이야기를 잇는 상점의 유일한 '직영점'이었던 [서로서로] 인터뷰 코너는 [서로의 달]이라는 하나의 책을 깊게 읽고 그것과 얽힌 자전적 이야기를 다루는 에세이로 탈바꿈한다. [개 장소 환대]는 계속 커다랗고 검은색인 강아지와 사는 이야기를 이어갈 예정이며, [그여자가 사제끼는 법]은 그여자가 요즘 꽂혀있는 브랜드나 상점을 가볍게 다뤄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바로 이 코너 [이상점의 이상한 이야기]는 이상점을 기획하고 브랜딩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전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손쉽게 어디로든 연결될 수 있는 세상에서 오롯이 혼자있는 시간은 하루에 몇분이나 될까. 주 5일, 6호선에서 보내는 왕복 82분은 그래서 소중하다.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던 것도 그게 아닐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혼자 있는 시간과 그 시간에 쓰는 이야기가 가진 힘은 어디까지일까. 이야기가 "있는" 상점으로 시작한 뉴스레터는 이야기를 "잇는" 상점이 되어서 망원동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고, 저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모임을 만든다. 그 이야기는 나를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데려가겠지?
내 발로 직접 걷지 않아도 멀리가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이야기가 있는 세상에서 나는 한뼘 더 자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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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달
여름 나라의 먼 들
에세이스트 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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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같고 시 같은 애틋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때때로 깊이, 기쁘게 그리움 속으로 침몰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떤 대상을 미세하게 다룰 줄 안다면 그건 사랑도 섬세하게 할 줄 안다는 뜻이다.’ 라는 문장은 여름 한낮 수풀 속으로 기운 한 쌍의 작은 몸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그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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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는 방학이 되면 먼 시골 할머니 댁에 맡겨지곤 했다. 나는 그게 꼭 싫지만은 않았는데, 우선 할머니는 엄마만큼 잔소리와 참견이 심하지 않아 숙제 걱정 없이 마음대로 놀고 먹고 잘 수 있었기 때문이고, 집성촌이었던 그곳에는 방학마다 나처럼 도시에서 내려온 멀고 가까운 친척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보다 여름에 아이들은 더욱 많았고 더욱 열렬히 뛰어놀았다. 논과 밭을 지나 오솔길과 들로 나가 달리고, 개울에서 헤엄치고, 곤충과 올갱이와 물고기를 잡고, 과일을 따고, 모닥불을 피우며 해가 긴 날들을 아낌없이 즐겼다. 밤이 늦도록 플래시를 비추며 얼음 땡을 하다가 동네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으면 그때서야 겨우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 손발을 닦고 잤다. 어느 집에 몰려가도 옥수수와 수박을 대접받았고, 어느 평상에서도 주인처럼 누워 별을 보았다.
가장 단짝이었던 친구는 나이도 같고 키도 비슷한 먼 친척뻘의 아이였다. 할머니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나는 그 애가 내려왔느냐고 물어보았다. 엊그제 왔더라. 하면 마음이 급해져 다음날 새벽닭이랑 같이 일어나 나가 놀 채비를 했다. 그러나 막상 다시 만나면 서로 서먹하여 하루쯤은 거리를 두었다. 머리 길이도 몸집도 말투도 지난 계절과는 달라 보였기 때문에, 딴 애들과 섞여 놀며 조금 떨어진 채로 서로를 탐색하고 낯섦을 추스리는 시간이 꼭 하루쯤은 필요했다.
다음날이 되면 적응을 마친 우리는 본격적으로 서로를 겨드랑이에 끼고 온 동네를 쏘다녔다. 그 애는 수영을 잘했고 나는 올갱이를 잘 잡았다. 그 애가 개울에서 물개처럼 헤엄치는 사이 나는 할머니의 작은 소쿠리에 올갱이를 가득 채웠다. 그러다 얼룩 물뱀이 수풀 사이에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면 그 애는 나를 재빨리 끌어다 넓은 바위에 올라서게 했다. 종일 개울에서 놀고 난 뒤에는 할머니가 데쳐 준 올갱이를 이쑤시개로 백 개쯤 빼먹고 우리는 화면 조정 시간이 될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다가 함께 잠들었다.
나는 벌레를 무서워하고 그 애는 가축을 무서워했다. 소금쟁이가 모인 웅덩이를 만나면 그 애가 먼저 첨벙첨벙 물에 교란을 일으킨 뒤에 내가 눈을 꼭 감고 웅덩이 위를 달렸다. 개가 있는 이웃집에 들어갈 때는 내가 앞서가 개의 주의를 끄는 동안 그 애가 쏜살같이 대문을 통과했다. 한번은 우리 옆집의 돼지가 나무 판자로 만든 울타리를 부수고 탈출한 사건이 벌어졌다. 온 동네 아이들이 돼지와 함께 논길 위를 널뛰며 흥분했다. 난리통에 겁을 먹고 하마터면 오물이 잔뜩 묻은 돼지와 정면충돌할 뻔한 그 애 손을 잡고 나는 뒷길로 돌아가 담장의 개구멍 앞에 앉았다. 뒤늦게 밭일하던 어른들이 허겁지겁 달려와 돼지를 잡았다 놓쳤다 난리법석은 이어졌고, 그 진귀한 소동을 우리는 끝까지 안전하게 관망했다.
여름에 모든 존재는 신이 나고 빛이 나고 살아난다. 터질 것같이 싱그러운 그 계절을 호쾌하게 가로지르던 시절이었다.
들꽃을 한아름 꺾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문득 줄기에 붙은 애벌레 한 마리를 보았다. 나는 으악! 하고 흙길에 꽃다발을 내던졌다. 그 애는 얼른 애벌레가 있는 꽃송이를 찾아 줍더니 왔던 길로 몸을 돌렸다. 어디가? 물으니 빨리와, 라고 대답했다. 나는 꽃을 들고 조심조심 걷는 그 애의 뒤꿈치를 따랐다. 옥수수와 고추밭을 지나 들에 다다르자, 그 애는 애벌레를 검지 손가락에 태워 가장 무성한 풀더미 속 가장 푸른 이파리 위에다 살며시 옮겼다. 신중하고 세심한 태도에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애벌레를 주시하는 그 애의 이마에 맑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수굿이 수풀 속의 작은 움직임을 들여다보았다.
애벌레가 떠난 꽃송이를 들고 다시 돌아올 때는 해가 막 기울기 시작했고 배가 고팠다. 쟤는 그럼 나비가 되는 거냐고 내가 묻자 그 애는 잠자코 생각하더니 작은 나방 같은 게 될 수도 있고. 라고 대답했다. 소면 부스러기처럼 왜소하고 창백한 것이 영판 다른 모습으로 변해 날아오르는 신비를 생각하자 입이 슬그머니 벌어졌다.
그 후로 무수한 여름이 지났다.
얼마 전 나는 사랑하는 친구에게서 꽃다발을 받았다. 채도가 높은 알사탕처럼 달콤한 빛깔의 꽃잎이 겹겹이 포개진, 꼭 여름 나라의 먼 들마다 피어있을 것 같은 꽃들이었다. 꽃을 안아본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나는 약간 감격했다.
꽃다발은 유리 꽃병에 담겨 우리 집 창가에 놓였고, 나는 아침마다 새 물을 갈아주었다. 사 일째 되던 날, 물을 갈아주려고 가까이 간 나는 무언가를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자세히 보니 작은 애벌레가 기울기를 맞추어 초록 줄기 위에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틀린 그림 찾기의 마지막 문제처럼 쉽게 찾을 수 없을 만큼 감쪽같았다. 아직도 모든 벌레를 무서워하는 나는 놀란 채로 몸이 굳어버렸다. 애벌레 역시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듯 죽은 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 아무것도 아닌 척하며 마주 서 있다가, 내가 먼저 그 자리를 살금살금 벗어났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꽃을 준 친구에게 상황을 상세히 적은 메시지를 보냈다. ‘알겠어, 내가 갈게.’라고 간결한 답을 준 친구는 고맙게도 그날 오후 집으로 와주었다. 그는 씩씩하게 꽃병을 싱크대로 옮긴 뒤 다발을 꺼내 펼쳤다. 그는 꽃과 줄기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의 거침없는 손이 애벌레를 짓누를까 걱정이 되어 나는 조심하라고 작게 말했다. 한참 동안 고개를 파묻고 다발 속을 헤집은 끝에 우리는 더욱 교묘한 자세로 줄기에 밀착된 애벌레를 찾았다. 우리는 애벌레가 붙잡고 있는 꽃송이만을 조심히 받쳐 들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와 자동문과 횡단보도와 계단을 지나 물이 흐르고 나무가 많고 잡초가 무성한 산책로로 향했다. 친구는 물가의 풀더미 위에 꽃을 가까이 대고 살살 떨구었다. 새 풀 위에 안착한 애벌레는 약간 어리둥절한 듯하더니 이내 아주 조금씩 주름을 잡았다 풀었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풀잎을 다 벗어나는데도 하루쯤은 걸릴 것 같았다. 몸을 수그리고 애벌레의 너무너무 작은 몸짓을 바라볼 때 나의 몸과 마음도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았다. 작은 것을 다루는 것에는 생각보다 많은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몸을 일으키자 땀이 났고 그때, 나는 어린 나의 여름을 기억했다.
온통 지금 안에 있을 때는 어떤 지금이 내게 기억될지 알지 못한다. 기억 중에 어떤 기억은 놀라울 만큼 오래 달릴 수 있다는 것도 모른다.
서른 번의 여름이 지났고 애벌레는 이번에는 들이 아니라 아파트 산책로로 돌아갔고 어린 친구는 어른 친구와 다른 얼굴이지만, 여름은 꼭 그때 그 여름인 것 같다. 애벌레를 돌려보내는 일에 진심인 친구와 빈집으로 남겨진 꽃송이를 들고 집으로 돌아갈 때, 나는 오래 달려온 기억이 마침내 내게 도착한 것에 조용히 놀란다. 하나의 시절과 계절과 풍경이 그림책처럼 열린다. 지금은 그 애틋한 풍경 속에 있는 것이라면 모두,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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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장소 환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로이오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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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다. 우리 집에서 학교를 가려면 두가지 선택이 있었다. 산을 둘러 도로로 가는 다소 느린 방법과 산길을 뚫고가는 빠른 방법. 당시 친구들, 그리고 동생과 함께 등하교를 하던 시기라 조금 더 빠른 산길로 주로 다녔다. 어느날, 여느때와 다름 없이 산길로 하교를 하는데 울그락 불그락 한 아저씨들 몇명이 꼬챙이에 무언가를 매달아 토치로 지지고 있었다. 그 옆을 보니 로이만한 강아지 한마리가 목줄이 나무에 매달린 채 죽음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가만히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 옆에 부르스타와 들통이 하나 있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의 끝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생각과 같다. 산에 숲이 무성할 때였고, 방학 전으로 기억하고 있으니 딱 지금 시기, 여름이었다.
해마다 삼복더위가 기승하는 시기가 되면 유행처럼 도는 사진이 하나 있다. 식용으로 팔려가는 철창에 갇힌 강아지와 반려인과 함께 드라이브를 하는 강아지가 함께 찍힌 사진이다. 철창에 갇혀 애처롭게 바라보는 몇마리의 강아지, 그리고 외제차를 타고 주인과 함께 드라이브 하는 강아지. 태어난 자리에 따라 달라지는, 그리고 이번 생에서 우연히 만난 반려인이 누군가에 따라 딛고 선 위치가 달라지는, 어쩌면 비극적인 이 서사는 로이를 키우기 전에는 나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번 글 에서는 개 식용과 관련한 문제와 더불어 로이와 함께 살면서 바뀐 나의 경험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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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규정은 다양한 존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주어진다. 특히 어떤 생명이 어떤 존재로 규정되는가의 문제는 그 존재 본질적인 차원의 문제가 있을 것이고, 어떻게 호명되는가의 문제 또한 있을 것이다. 김춘수의 시 ‘꽃’의 상징적인 이야기처럼 ‘이름’과 ‘호명’의 여부는 존재 규정에 큰 축을 담당한다. 마셜 살린즈는 ‘이름’을 붙인 동물은 먹지 않는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미국인들이 개와 말을 먹지 않는 이유는 미국 문화에서 그들에게는 이름을 지어주기 때문이다. 즉 ‘소비의 대상, 물건으로 분류된 동물은 의인화 되지 않으며, 얼굴과 이름이 없는 상태로 우리의 상징 세계 속에 등장‘하기에 반려동물이나 의인화 된 동물은 먹을 수 없는 대상으로 분류된다고 본 것이다. 때문에 의인화 과정과 이름을 부여하는 과정이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특히 수천년간 이어온 개와 사람의 관계는 단순히 가축과 주인과의 관계를 넘어섰다. 그 두 종은 지금에 이르러서, 아니 훨씬 전부터 반려생활을 통해 공생을 담당해온 반려관계이다. 이런 문화적 토양 위에서 서양에서는 개를 먹지 않게 되었다.
반면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 한국에서는 개 식용 문화가 크게 발달되어 있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동국세시기에서는 “개장국을 먹으면서 땀을 내면 더위를 물리쳐 보허한다.”는 구절이 있었으며, 농가월령가에도 “황구의 고기가 사람을 보한다.”는 구절이 전해진다. 또한 동의보감에는 “개고기가 성질이 따뜻하고 독이 없고, 오장을 편하게 한다. 혈맥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한다. 골수를 충족시켜 허리·무릎을 따뜻하게 하고 양도를 일으켜 기력을 증진시킨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먹을것이 부족했던 시절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개 식용 문화가 발달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동아시아의 개 식용 문화는 특히 삼복(伏)이라는 절기와 함께 특별히 발달되어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진나라에서는 6~7월 세번의 제사를 지내며 개를 잡아 성의 사대문 밖에 걸어 열독과 악귀를 물리쳤고, 당시 신하들에게 고기를 나눠줬다고 한다. 또한 백성들도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영양가 있는 보양식을 챙겨먹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덕공 2년, 복일을 정해 개를 잡아 열독, 즉 사람을 해치는 뜨거운 독기를 제거했다.” - 사기, 사마천
사람이 개처럼 엎드려있는 형상의 한자인 복伏은 여름철 무더위에 무기력하게 퍼져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오죽하면 개처럼 축 쳐져있는 그 한자로 절기의 이름을 따왔을까. 때문에 중국과 한국에서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삼복이라는 절기에, 삼복 더위에 맞서, 개를 보양으로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동물자유연대의 보고서에 따르면 육견협회 등 개 식용을 옹호하는 단체가 자랑하는 ‘보신’의 문화는 허구에 불과하다고 한다. 개농장에서 사육되는 개들은 거의 대부분 음식물 쓰레기와 축산폐기물을 주식으로 길러진다. 또한 비위생적인 조그마한 케이지에 갇혀 음식다운 음식을 섭취하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한 채 바이러스와 질병에 그대로 노출되어 사육된다고 한다.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인해 다량의 항생제가 투여돼 모든 점포의 살코기에서 다량의 항생제가 검출돼 보양식의 이름 또한 걸맞지 않는 상황이다. 그것의 효능과 전통을 모두 차치하고, 어찌 됐던 한국의 개 식용 문화로 인해 복날을 비롯해 개가 식용으로 소비되는 숫자는 2022년 기준 연간 38만 8천 여 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나도 개 식용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내 큰아버지는 89년도부터 보신탕 가게를 운영했다. 때문에 많은 어린이들이 으레 당했던 것처럼 육개장인 줄 알고 아무런 의심 없이 먹기 시작했다. 맛이 꽤 있었던지라 성인이 되어서는 친구들과 함께 큰아버지 가게를 찾아가서 먹었다. 조카라는 혈연을 앞세워 돈을 거의 지불하지 않고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자주, 매년 서너번 이상은 찾았었다. 그러나 그때도 본가에서는 계속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보신탕을 먹을때마다 생기는 내면의 괴리는 먹는 개와 키우는 개는 다르다고 억지로 정당화 했던 것 같다. 내가 키우는 강아지들은 이름이 있었고 나와 살을 붙이고 있었고 나는 같이 사는 반려인이라기 보다 그 생명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했었다(지금은 생각이 바뀌어 삶의 동반자로 함께 살고 있다). 오히려 음식으로 마주한 개는 다른 방식으로 사육된 ‘고기’라고 생각해버렸다.
생각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로이를 본격적으로 도맡아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로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동물권에 관심을 두기시작했고, 로이의 행복에 대해 알아야 했기에 개라는 동물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다. 채식에도 단계가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게된 것도 이 때다. 계속 육식을 할 것인가를 처음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아직 실천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고무적인 것은 로이와 같은 종을 더이상 먹지 않기로 다짐을 하게 됐다. 내가 보신탕을 먹고 들어오면 로이가 약간 거리를 두는 것이 느낌적으로 느껴져서 그것 때문이라도 그 이후로 굳이 찾아 먹지는 않았다. 명절에는 거의 대부분 큰아버지 댁에서 모였기 때문에 보신탕이 항상 밥으로 나왔는데, 그 또한 먹지 않는다. 그렇게 즐기던 보신탕을 왜 안먹냐는 가족들에게 ‘저 개고기 끊었어요’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는데, 삼촌들과 숙모들에게는 ‘니가?’, ‘왜?’ 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충격적인 이야기였나보다.
내가 이제는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고 하면 어른들이나 즐기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이야기한다. 왜 개만 가지고 그러냐고. 왜 다른 동물을 먹는 문제는 제기하지 않느냐고. 그럴때마다 이야기 할 것이다. 로이를 통해서 '육식'을 하나 줄인 것을 스스로 칭찬하고 있다고. 그리고 육식의 대안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이렇게 바뀐 작은 행동 하나가 최소한 나에게 큰 변화를 줄 것이라고.
이번 호를 쓰다가 문득 대학교때 들었던 윤리학 수업의 한 부분이 기억났다. 그때 윤리학 수업을 들으면서 육식과 채식에 대한 몇몇 철학자들의 윤리학적 입장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지금 기억나는 것은 ‘고통의 크기’ 였다. 인간, 포유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 식물 등 각 종별로 느끼는 고통의 크기를 인간학적 입장에서 추산한 부분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종별로 고통을 느끼는 크기가 상대적으로 다르다는 논리로 수업이 진행됐었다. 때문에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고통의 크기를 기본으로 한 윤리적 선택이다.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가장 고통이 덜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때 그 수업의 요점이었다.
고통의 크기와 문제, 공장식 축산, 탄소배출, 여러 전염병의 문제, 학대의 문제, 윤리적 문제, 환경적인 문제 등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아니, 나는 고려해서 행동해보고자 한다. 어떤 부분을 실제로 실천할 것 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과 결단이 필요하다.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 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2023년 한가지는 실행해보고자 한다. 로이와 함께 살며 바뀐 내 생각이 또 어떤 부분을 구체적으로 바꿔나갈지 나도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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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드가 뭔지,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보니 주종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때는 와인에 빠져서 와인 클래스도 열고 친구들과 와인바만 쫓아다녔었는데 요즘엔 하이볼이었다가 이젠 위스키다. '환대'라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칵테일과 위스키도 좋지만 바텐더들의 환대가 더 빛나는 곳을 알게되었다. 소개하면서 찾아보니 기슭 대표님이 빌리브라는 매거진과 인터뷰한 것을 발견. '은평구의 축복이라 불리는 바'. 제목이 과하지 않다. 그들의 환대는 축복이라 불릴만. "이 자리는 에어컨 바람이 바로 와서 추워요." 하면서 건네는 자켓(담요가 아니라 자켓이라니! 신경쓰고 간 내 패션을 망치지 않네...), "오늘 꼭 두 분이서만 이야기하고 싶은게 아니시라면, 바 자리로 옮겨드릴까요?" 바에 앉아도 무턱대고 말걸지 않는다. 그들의 '첨언'은 자연스럽고 물흐르듯이 흐른다. 위스키 한 잔을 시키면 페어링 할 수 있도록 에스프레소, 아이스크림, 초콜릿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연속으로 에스프레소를 고르면 물어본다. "이번에는 플랫화이트로 드려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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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크하고 러블리한 악세사리 브랜드, 민재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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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고 강렬하고 존재감 넘치는 아이템을 좋아하는데, 한동안 수수하게(?)하고 다니다가 요즘은 슬금슬금 이런게 예뻐보인다. 포인트 주거나 기분전환 하고 싶을 때, 특히 해외로 여행을 떠나게 되어서 평소보다 과감해졌을 때 착용하기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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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에 체리🍒 귀걸이를 하고 나갔는데 거울을 볼 때마다 달랑 달랑 귀여워서 기분이 좋았다. 아무 약속도 없고 하는 일 없이 침대에 누워만 있는 일요일이 있을 때가 있는데, 뒹굴거리다가 벌떡 일어나 옷이랑 악세사리, 가방들을 이리저리 코디하면서 입어보곤 한다. 이 옷 진짜 예쁘네, 이 귀걸이는 이 원피스에 진짜 잘 어울리는구나 하면서 거울 속에 나를 비춘다. 여지없이 상기된 얼굴로 헤헤거리는 내 얼굴을 보면 스스로가 귀엽다. 사제끼기의 긍정적 기운이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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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잇는 상점에서 플리마켓을 연다. 유명한 셀러는 (아직) 없지만 고심해서 고르고 최소 2주~한달 넘게 착용해보고 다닌 아이템들 중에서 제일 손이 많이 갔던 것들 위주로 선보인다. 빈티지 가방, 신발 등도 있고 막상 입어보니 그여자에게 너무 작거나🤣 어울리지 않은 것들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드디어 "검정 강아지 차별하지 마세요" 티셔츠 샘플링이 끝나 마켓에서 구경할 수 있다.
일시 2023년 7월 29일(토) 오후 1시~7시
장소 마포구 포은로 134-1 1층 이야기를 잇는 상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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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잇는 상점협업문의: story.store.spring@gmail.com서울시 마포구 포은로 134-1 1층 왼쪽수신거부 Unsubscri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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