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02. 이야기를 잇는 상점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
|
|
잠시만 안녕
지난 겨울 이야기를 잇는 상점 뉴스레터에 '뜨ㅓ'라는 이름으로 뜨개 생활을 글로 써줄 것을 제안받았었다. 그 때 함께 찾아온, 아가 모찌의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언젠가는 찾아오겠지, 생각하긴 했지만 그게 지금일 줄은 몰랐다. 내 신체의 건강만 잘 나누어 주면 아기는 스스로 뱃속에서 집을 만들고, 젤리곰이 되고, 웅장한 소리를 내는 심장을 만들 줄 알았는데, 아기가 커질수록, 일상생활에 제한받는 일이 많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육아에 비하면 아주 적은 부분이겠지만) 뜨개를 오래 하면 손가락이 저리고, 쭈그려 앉거나 바닥에 떨어진 것을 줍는 자세가 어려워졌다. 체력적으로 힘이 들어 못하는 일이 늘어났다. 그래서 여섯 번째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당분간은 뜨ㅓ를 쉬기로 결정했다.
|
|
|
모찌 맞이 및 뜨ㅓ 휴재 기념 작업물은 신생아 가디건으로 골랐다. 바늘이야기의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고른 도안인데, 뜨개인이라면 꼭 한 번 가보시길 추천! 절대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햇빛
덕인지 아늑하고 안정적인 분위기가 좋다. 1층에는 실과 도구, 각종 도안 등을 팔고 2층은 카페를 운영한다. 1층에서 실을 사서 2층으로 올라가 뜨개를 하는 그야말로 뜨개인의 성지이다. 종종 카페에 가서 너무 오랜 시간 뜨개를 하면 눈치 보일 때가 있는데, 바늘이야기 2층은 온통 실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마음껏 뜨다 갈 수 있다. |
|
|
모찌를 위한 뜨개는 적당한 도안을 찾아보고만 있었는데, 마음에 드는 도안을 찾기 어렵기도 했고, 아가 살에 직접 닿는 것이니 실 재질도 만져보고 사고 싶었다. 마침 바늘이야기에 아가 옷 샘플이 진열되어 있었다!!! 도안도 있었고 재료들도 한 번에 갖출 수 있어서 도구와 실을 준비해서 2층으로 올라갔다. |
|
|
대바늘은 목도리 뜨기 이후 오랜만이라 겉뜨기와 안뜨기 영상을 다시 보고 기억을 되살려내었다. 첫단에 108코를 만들어야 하는데 수를 자꾸 잘 못 세어서 한 단 만드는데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코바늘과는 다른 대바늘 뜨개의 용어들이 생소했고 처음에는 암호 같던 도안들을 한줄, 한줄 해석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대바늘의 세계를 이제 막 알게 되었는데, 당분간 뜨개를 많이 못할 것
같아 벌써 아쉽다. |
|
|
모아 뜨기 4단 한 후 메리야스 뜨기를 34단 정도 해야 하는 구간이 나왔을 때, 머리 쓰지 않아도 되는 구간이 길게 나와서 신이 났다. 하지만 메리야스 뜨기 34단은 생각보다 아득했고, 그래서 이번 글은 완성품을 보여주지 못하는 첫 글이 될 것이다. 메리야스 뜨기 이후에도 난해한 기술들이 많지만 하나하나 천천히 알아보며 모찌를 환영하는 마음으로 만들어 가야지! |
|
|
앞으로는 나의 뜨개는 여태 만들었던 것보다 더 크고 정교한 것들을 만드는 작업이 될 것 같다. 뜨개의 시간에 조금 더 파고들어 보려 한다.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나를 들여다볼 여유가 생길 것 같아서,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뜨개의 즐거움을 안 것은 5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동안은 혼자 만들고 만족하고를 반복하다가, 본격적으로 나의 뜨개생활을 풍요롭게 해 준 건 이상점의 편집자인 그여자가 사제끼는 법의 로이언니였다. 그의 (옛)작업실에서 독서모임으로 만나 온갖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나의 뜨개취미를 그가 알아봐 주었고, 혼자만 하던 취미 생활에서 여럿이서 공유할 수 있는 기쁨까지 알게 해 주었다. 그냥 모여서 뜨는 정도였지만 작은 규모의 수업과 모임도 도전해볼 수 있었다. 물론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취미를 대하는 나만의 방식을 알게 되는 등 배우는 것이 꼭 있었다. 그래서인지 기획에 재주가 있는 그가 제안하는 무엇이든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뜨ㅓ]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도 이상점 기획자 로이언니였다. 작년 겨울 피클메뉴가 맛있었던 서촌의 칵테일 바에서 정성스레 작성한 뜨ㅓ제안서를 나에게 건넸다. 제안서는 처음 받아보았지만, 이 귀한 대접에 나는 읽어보지도 않고 당연히 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공개적인 글을 여섯 편이나 쓸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연재했던 글을 하나씩 다시 읽다보면, 뜨개가 더 좋아지고 하고 싶어진다. 다양한 뜨개도구와 여러 가지 두께의 바늘을 전부 장착하고 어떤 도안과 실이 오더라도 다 뜨겠다는 마음이 된다. 재주 있는 친구를 만나 [뜨ㅓ]를 쓰게 되면서 취미에 대한 나의 진심을 알게 되고, 글을 써서 내보임과 동시에 공감받는 느낌이 들었다. 또 하나의 숨 쉴 구멍을 찾은 것 같아 행복했다. [뜨ㅓ]는 잠시 쉬어가지만 뜨개는 계속될 예정이다. 인스타그램 @yarnkkom 피드를 통해 꾸준히 소식을 전하려고 한다.
그럼, 잠시만 안녕! |
|
|
📓 이야기를 잇는 상점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 이야기가 담긴 물건을 판매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상점'에는 '서로서로', '뜨ㅓ', '사부작 사부작', '개, 장소, 환대', '그 여자가 사제끼는 법' 5개의 이야기가 입점해있고, 매주 각 상점의 이야기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
|
|
always.spring111@gmail.com 서울시 마포구 포은로 134-1 1층 왼쪽 이야기를잇는상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