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소풍이 아니더라도 엄마는 김밥을 자주 말아주셨다. 주말 아침이 되면 쟁반 위에 최소 20줄의 김밥이 쌓여있었고 주말동안은 그 깁밥으로 끼니 뿐 아니라 간식도 해결했다. 델몬트 병에 들어있는 보리차와 김밥을 우걱우걱 먹으며 만화를 보았던 추억이 있다.

하얀 쌀밥을 한솥단지 해서 방앗간에 가서 짜내어 온 참기름과 맛소금으로 간을 하고, 당근은 조금 두껍게 채를 썬다. 오이는 왕소금에 살짝 절이고 계란을 휘리릭 저어 지단을 만든 뒤 벽돌같은 김밥햄을 부치고 굳이 통 단무지를 잘라 김밥을 내어주셨다. 특별한 재료를 넣어서 만든 것이 아니었으니 세상 모든 김밥이 엄마가 해주는 김밥과 동일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간단히 돌돌 말아 김밥탑을 척척 쌓아 올리는 엄마를 보니 김밥 만들기는 세상에서 제일 쉬워보였다.

기름을 두르고 소금을 솔솔 뿌려서 조금 흐물흐물해질때까지 볶는다.

결혼 후에도 종종 엄마의 깁밥이 먹고싶어 재료를 사들고 엄마 집에 가곤 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엄마의 수고를 빌릴 수 없을 터. 어렵지 않은 마음을 먹고 어느 주말 아침 김밥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재료를 준비하고 말아서 김밥이 내 입속으로 들어가는데까지 4시간이 걸렸다. 김밥 10줄에 그날의 모든 체력을 소진해버렸다. 김밥을 먹으며 ‘한 인간이 독립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이렇게 고단하구나. 앞으로 이 힘든 날들을 무슨 마음과 어떤 방법으로 헤쳐나갈 것인가?’ , ‘쉽다고 생각한 일에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닥칠 때는 그 무게를 감당하기가 더 어려우니 애초부터 쉽다고 생각하지 말아야하는 것일까?’

김밥 10줄에 넋이 제대로 나가버렸다.

그때는 처음이고 잘 해보고싶은 마음에 힘주어 만들다보니 힘에 부쳤지만 지금은 요리와 살림은 쉽게 해야한다는 나의 신념을 앞장세워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털어 얼렁뚱땅 만들고 싶은대로 만들어 먹는다.

김밥을 만들며 생긴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작성 중이다. 아직 양쪽 엄마들의 찬스를 이용하여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으니 완전한 독립이라 할 수 없겠고, 쉽다고 생각한 일 뿐만 아니라 불현듯 찾아오는 어려운 일에도 의연해지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또한 살림은 나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성취감을 얻게하여 일상을 살아가는 바탕이 되어주고 있다.

이래서 살림이 더 즐거워지나보다.

레시피📜

옆지기가 조미김인줄 알고 구매했던 김이다. 마른김이고 김 특유의 비린내도 없고 맛이 풍부하다. 여러 김밥김을 구매해봤지만 지금까지는 이 김이 가장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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