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14. 이야기를 잇는 상점 열여덟 번째 이야기 |
|
|
반려견과 반려인은 닮는다는데, 로이와 나도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일단 외형이 크고 둘다 까매서 특히 할머니들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성격도 비슷해서 헤헤거리다가도 한번 빈정이 상하면 크게 모난 행동을 한다. 종종 병원신세를 지는 것마저 닮았는데, 우리 둘 다 내장기관은 건강한 편이지만 관절과 허리가 안 좋아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잦다. 한번은 버스가 칙칙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는데 소리에 민감한 로이가 쫄아서 튀어나가는 바람에 내 허리가 삐끗해서 약 3주 가까이 병원에 다니는 중이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겁이 많고(로이) 연약한(나) 우리가 함께 다니다 보니 생긴 서글픈 사연이랄까… |
|
|
#현금으로 하시면 150에 해드릴게요
어린 강아지를 입양하면 약 3개월 가까이 바깥 산책을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파보 바이러스라는 치사율이 80%에 육박하는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견에게는 위험하지 않지만 어린 강아지에게 치명적이고, 파보에 감염된 다른 강아지에게서 옮는 경우가 많아서 3개월정도는 산책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로이는 대형견인데다가 진돗개의 특성을 물려받아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절대 집에서 대소변을 보지 않았다. 로이가 우리집에 온 지 2개월쯤 됐을 때, 갑자기 사료도 거부하고 집에 설사를 하고 토를 했다. 지금까지 한번도 이랬던 적이 없던 친구여서 동생과 나는 너무 놀랐다. 새벽이었는데 서둘러 본가 근처 24시간 진료를 하는 동물병원에 갔다. 약간 눈 비비며 진료실에서 나왔던 수의사가 떠오르는데 기억은 확실하지 않다. 바로 파보 바이러스 검사를 하게 됐는데, 코로나 검사 키트와 비슷하게 생긴 키트로 항문에서 변을 채취해 테스트를 했다. 코로나 키트와 같이 두줄이 나오면 양성인데, 한줄이 나오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이게 왠걸, 결과는 두 줄. 하지만 한 줄이 되게 희미하게 보였다. 의사는 확신에 차서 이건 파보바이러스라고, 치료를 해야한다고 이야기했다.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며, 진료비는 얼마나 나오는지 물어봤더니 바로 대답해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하고 우리에게 알려줬다. 내가 기억하는 수의사의 말은 이랬다.
“파보에 걸리면 솔직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일주일가량 수액을 맞고 24시간 돌보며 강아지 상태를 확인해야 하고요. 비용은 250만원에 해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아지가 살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고요, 치사율이 80%정도 되기 때문에 만약 죽어도 저희 책임은 아니라고 말씀드립니다.”
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하면, 그 때는 살 수 있는 확률이 20%가 채 되지 않는데, 250만원이 너무 큰 돈이라고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돈의 액수보다는 수의사의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는 책임감 없는 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병원에 오기 전 인터넷을 찾아보니 포카리스웨트를 먹이고 잘 돌봤더니 살아났다는 사례도 있어서 일단 로이를 데리고 나왔다. 내가 가난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아니라 돈을 잘 버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면 그때 로이를 맡기고 나올 수 있었을까? 의사가 조금만 더 확신을 줬더라면..?
아침이 되자마자 동물약국에 파보 바이러스 진단 키트를 사러 갔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는데 전날 갔던 병원의 수의사였다.
“어제 250이라고 말씀드렸는데 현금으로 하시면 200까지 해드릴게요.”
조금 이따가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오전에 병원에 강아지를 맡기시고, 오후에 데리고 가시는걸로 하시면 150까지 해드릴게요”
마지막 전화통화를 마치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수의사가 너무 괘씸했다. 아무리 인간종이 아니어도, 같은 생명인데 목숨가지고 장난질치는듯한 흥정행위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키트를 사다가 집에서 다시 검사해보니 두 줄 중 한 줄이 거의 보일랑말랑한정도로 희미했다. 병원에 가는 대신 편의점에서 포카리스웨트 1.5L짜리 한병을 사와서 로이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3~4일정도 지나자 기력을 회복한 녀석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이곳저곳 물어뜯고 장난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이따금 생각이 난다. “150에 해드릴게요.” |
|
|
중성화수술 하고 나서. 붕대..짠해 ㅠㅠㅠㅠㅠ |
|
|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세요
망원동으로 이사를 오니 산책을 더 많이 하게됐다. 매일 들르던 브레덴코도 없고, 완이네 감자탕도 없으니 앉아서 쉬지 않고 오롯이 걷기만 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1시간, 저녁 1시간, 낮 시간에는 작업실로 출근. 로이의 운동량은 더욱 많아졌음이 분명하다. 이사한지 3~4주정도 지났을까, 여느 날과 같이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화장실에서 발을 씻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녀석이 계속 아프다고 난리를 쳤다. 어디가 아픈지 자세히 봤더니 왼쪽 다리, 다리에서도 골반 쪽에 통증을 느끼는지 앉지도 못하고, 앉아서도 아프다고 낑낑댔다. 그때가 저녁 10시경. 자고 다음날 아침에 병원에 가려고 로이를 억지로 눕히고 나도 누웠는데, 로이가 누워있다 말고 일어나서는 다시 앉거나 눕지도 못하고 2~30분가량을 낑낑대며 돌아다녔다. 안되겠다싶어 바로 차에 태워서 집에서 가까운 24시간 병원에 갔다.
로이가 강아지였을 때 한번 데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3~4층정도 되는 건물 전체가 병원이어서 더욱 신뢰가 갔다. 병원 1층 입구 바로 앞에 카운터가 있어서 접수를 하고 기다렸다. 여느 때 같았으면 로이도 앉아있다가 진료를 받았을텐데, 왼쪽 뒷다리가 아프니 앉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서 수의사를 기다렸다. 접수하는 사람이 지금 수의사가 화장실 갔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10분쯤 기다렸을까. 수의사가 나와 이것저것 물어보고 로이 상태를 체크하려고 하는데, 아픈데를 건드리면 입질을 할 수 있어서 입마개를 요청했다. 입마개를 씌우고서 촉진을 시작했다. 수의사가 계속 아픈데를 못 찾아서 내가 이렇게 하면 아파한다고 만져서 알려주니 로이도 참지않고 낑! 거렸다. 로이가 입마개를 하고 있는데도 수의사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만 보더라. 마침 그때 웰시코기 한 마리가 반려인 커플 품에 안긴채 다급하게 병원으로 들어왔다. 직감적으로 응급상황 같았고, 수의사도 양해를 구했기에 나도 먼저 진료를 보라고 흔쾌히 이야기했다.
진료실 안이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아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로이는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기다리는데, 10분, 20분, 30분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때까지 병원 직원, 수의사 포함 누구도 나와 로이에게 어떤 진행상황도 알려주지 않았다. 조금씩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물론 응급상황인 강아지의 상태도 걱정됐기 때문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침내 수의사가 나와서 지금 들어간 강아지 상태가 좋지 않으니 로이는 주사만 맞고 가라고 했다. 주사는 내가 놔야하는 것 이었다. 주사를 놓는 것도 내가 직접 해야하고, 신장에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 그래서 이 주사를 로이에게 투여해도 되는 것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차라리 진통제를 놔줬으면 좋겠다하니 진료실에 들어간 수의사를 또 한참을 기다렸다. 주사를 맞추기 위해 로이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잡으면서 참다못해 한마디를 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너무한거 아닙니까.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설명도 양해도 없이 3~40여분을 기다리게 하고, 내 새끼는 앉지도 눕지도 못해 이러고 있는데 너무한 것 아닙니까.”
수의사는 딱 한마디를 했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세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라… 입장을 수도 없이 바꿔놓고 생각해봤다. 내가 수의사나 직원이라면 중간에 나와서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조금 더 기다리실수도 있다,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양해해달라,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얼마나 걱정됐으면 이 밤에 병원을 찾았을까,하고 '입장 바꿔' 생각해주는 마음은 왜 그 수의사에게는 없었을까? 그 말이 기분 나쁘기도 했지만 대형견이라 무서웠는지 가까이 와서 진료를 봐주지도 않는 수의사한테 내가 왜 그런 말을 들어야하는지 분이 풀리지 않았다. 1시간이면 효과가 나타날 거라는 진통제를 맞고 왔는데도 로이는 그날 밤새 서서 아파했다. 너무 화가 나서 방문 후기를 남겼다. 내가 느꼈던 감정 그대로 남겼다. 나는 다시는 그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다. |
|
|
앞서 언급했듯 로이도 나처럼 관절이 안좋다. 대형견의 숙명인가 ㅠㅠ
이 날도 다리를 아파해서 병원에 갔는데 저렇게 해맑다 |
|
|
#3일정도 약 먹여보시고 저랑 통화하시죠
으리으리한 병원에서 억울한 상황을 겪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동생’이라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동물병원에 갔다. 회원으로 가입되있어 로이 중성화수술도 했던 곳이다. 만약 로이가 낮에 아팠다면, 나는 무조건 이 병원에 왔을 것이다.
병원 입구로 들어서니 수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게 맞아줬다. 로이의 상황을 설명하고 진료를 받았다. 전날엔 내가 촉진을 해줬는데, 여기는 선생님이 로이가 아픈 곳을 꼼꼼하게 체크했고 그것을 토대로 앞으로의 진료 방향에 대해 알려줬다. 앞으로 3일치 약을 지어줄테니 먹여보고 3일 뒤에 본인과 통화해서 앞으로의 치료 방향을 정하자고했다. 약을 3일이나 먹었는데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으면 기능상의 문제로 의심해볼 수 있고, 약을 먹으면서 나아지면 지금 상황만 잘 버티면 될 것 같다고 하면서. 시간을 두고 아이를 관찰하며 방향을 정하는 치료방식. 나는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그 전의 병원들처럼 보호자에게 무얼 선택할지 떠넘기거나 책임을 회피하려고 확신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고 경과를 지켜보자는 이야기가 신뢰감있게 다가왔다. 약을 먹이고 4~5일이 지난 뒤 수의사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로이가 많이 나아졌다고, 기능상의 문제보다 당장의 통증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고 하니 너무 다행이라는 목소리가 전화기 넘어 들려왔다.
우리동생에서 진료를 받을 때마다 좋은 기억들만 있는데, 일단 과잉진료를 하지 않는다. 한번은 로이 치아가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서 스켈링을 하러 갔는데 못했다. 이유인즉 미용 목적의 스켈링은 권하지 않으며 스켈링을 자주하면 치아가 약해지는데다가 어차피 다시 치석이 쌓이기 때문에 로이 나이에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켈링을 하면 전신마취를 해야하니까 그 때 며느리 발톱과 발바닥에 난 털을 정리해달라고 말씀드릴 생각이었는데, (로이는 발이 특히 예민하고 겁이 많아서 발톱, 발털 깎을 때마다 한바탕 난리가 난다) 스켈링은 선생님께 기분좋은 거절을 당했고, 우리동생 의료진 선생님들 모두 총출동해서 로이 발톱을 깎아주셨다. 진료비 단돈 8,000원….
또, 조합원이면 진료비도 할인받을 수 있고, 때때로 반려동물을 잘 이해하기 위한 교육 같은 것을 열기도 해 안내 문자가 날아온다. 줌으로 참여 가능한 이 교육은 심지어 무료!
인간도 마찬가지겠지만, 동물도 어떤 의사와 수의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바뀔 수 있다. 수의사의 한 순간 잘못된 판단 때문에 간단한 처치로 끝날 일을 큰 수술 여러 번에 좋지 않은 예후를 갖게된 강아지의 사연을 알고있다. 그 강아지의 반려인인 지인은 내 강아지는 숨이 넘어가는데, 당장 남은 치료비를 계산하지 않으면 치료를 진행할 수 없다며 진료비 영수증을 내밀던 병원 관계자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급한 마음에 찾아간 병원이 왜 하필 그 병원이었을까 하루에도 몇번씩 땅을 치고 후회한다고.
친절하고 명쾌한, 다정하면서 정확한 의료진을 만나는게 얼마나 축복인지 로이의 몇 차례 병원행을 통해 절실히 느꼈다. 돈으로 흥정하려 하지 않고, 반려동물도 한 ‘명’으로 봐주는 병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조합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찾아보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반려인들에게 자신있게 권하고 싶다. ‘우리동생’ 협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내 반려동물이 좀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힘쓰는 이 조합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수의사 선생님이 있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것을 느끼며 다시 한 번 깊이 감사한다.
[우리동생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http://mapowithpet.com/wordpress/ |
|
|
간식 달라고 떼쓰는 녀석.
사실 반려동물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사진은 커녕 애를 추스리고 나오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번호는 글과 어울리는 사진이 거의 없다. |
|
|
📓 이야기를 잇는 상점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 이야기들이 담긴 물건을 가끔씩 판매하는 곳입니다.
지금 '이상점'에는 '서로서로', '뜨ㅓ', '사부작 사부작', '개, 장소, 환대', '그 여자가 사제끼는 법' 5개의 이야기가 입점해있고, 매주 각 상점의 이야기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
|
|
always.spring111@gmail.com 서울특별시 마포구 포은로 134-1 1층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