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23. 이야기를 잇는 상점 열다섯 번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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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맞이 모자뜨기
(부제 :내 마음대로 되는건 없어)
뜨ㅓ에 글을 연재하고 벌써 3번째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4월 초 봄꽃 놀이에 햇볕을 막아줄 모자를 생각하다가, 여름이 코 앞에 왔다. 모자는 매 계절마다 위시뜨개리스트 안에 있었는데 매번 가방만 만들다 보니 종목을 바꾸기가 여간 어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줄을 뜰 수 있는 평평한 작업물과는 다르게, 코 수를 일정하게 늘려줘야 하는 생각이 필요해서, 손이 잘 안 갔던 것 같다.
모자는 몸에 착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안을 고르는 조건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내 두상에 잘 어울리는, 끝은 적당히 퍼지고 무늬는 거의 없는, 민낯으로 돌아다녀도 얼굴을 폭 가려줄 만한 크기의 도안을 찾고 있었다. 포털사이트에서 알아보다가 착용샷이 아쉬워서 유튜브에서 ‘버킷햇 뜨기, 여름모자 뜨기 등’의 키워드로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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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뜰안공방 영상의 모자가 제일 ‘적당’ 했다. DIY 키트를 판매하는 링크가 있었지만 동영상으로 충분히 도안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영상에서 소개된 실만 샀다. 앞서 말했지만 모자도안은 특히 코 수를 세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에서 늘리고, 어느 부분에서 동그랗게 말아줄지를 생각해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응용하지 않고 영상에서 알려주는 대로 하려고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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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썸네일의 모자를 만들기 위해, 모사용 8호 코바늘과 미소실 3 타래가 필요했다. 미소실은 흡수력이 좋고 변형이 잘 안 되는 실로 모자, 가방 등에 적합하다고 한다. 종이실은 아니지만, 종이실 같은 질감의 아주 가볍고 까끌 거리지 않는 여름에 적당한 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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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한 번 봤다. 역시 한 번에 이해될 리 없다. 어느 정도 규칙에 도달하기까지 3번을 풀었다가 다시 떴다. 영상에서는 뜰안 공방만의 코 늘리기 기법이 소개되는데, 모자가 각지지 않고 둥그렇게 완성되도록 코를 늘리는 위치를 늘리는 단마다 바꿔주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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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이 있는 뜨개 작업은 늘 마지막에 어떻게 완성되어 있을까하는 기대를 한다. 기대와 일치하는 작업물이 나오면 너무 행복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손 땀도 다르고, 실이 부족할 때 덧대는 방법, 마감하는 방법이 다 다르다. 작은 요인 같지만 완성품 전체 모양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완성 자체에 의미를 가지며 기대하거나 실망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디서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이다. 이 단순한 법칙을 일상생활 중에 종종 잊어버린다. 특히 그 대상이 가족일 경우에는, 함께 보내온 시간만큼 기대가 더 높아지고 정교해지는 것 같다. 늘 나를 이해해 주겠지, 이렇게 얘기해도 알아듣겠지, 내가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해주겠지, 얘기를 잘 들어주겠지 라는 생각들이 당연한 듯 기저에 깔려있다. 무언가를 바랐다가 기대에 못 비쳤을때에는 실망만 가득해서 잘 모르다가, 감정이 걷히고 나면 기대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만드는 모자 하나 마음대로 못하면서 사람에게 기대감을 갖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하면 그렇게 못나 보일 수가 없다. 그저 누구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기대만 가지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은 손님(거래처)처럼”이라고 매번 다짐하지만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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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상을 정말 그대로 따라 했지만, 똑같이 생긴 모자를 만들지는 못했다. 영상보다는 마감을 더 탄탄하게 했고, 다른 두 타래의 실을 연결하는 부분이 조금 달랐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결과물은 마음에 든다. 매해 봄여름에 쓰고 다니며 가끔 이 글을 기억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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