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들에게 한 달에 한번씩 ‘산드라 식탁’이라는 부캐를 달고 내가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하기로 했다. 그때는 ‘어쩌다 비건’ 책의 영향으로 지금보다 채식요리에 적극적이었기에 친구들에게 내가 맛보고 시도하고 싶은 다양한 요리를 대접할 수 있었다.

내가 즐겁고자 시작한 일이였는데 친구들은 기꺼이 참여해주었고 다행히 맛있다는 인사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는 주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내내 어떤 음식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있었고, 기대에 부흥하고 싶어서 채식 연구가 선생님들의 유튜브, 책을 찾아가며 채수를 내기도 하고, 마요네즈도 만들겠노라 처음으로 생 캐슈넛을 사서 갈다가 믹서기의 과부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맛간장을 만들기 위해 표고버섯, 사과, 배, 양파, 월계수 잎, 정향, 팔각을 넣은 간장을 5시간 넘게 달이기도 했다.

내가 음식을 대접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친구들이 집에서 한 번씩 해먹어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정말 간간히 집에서 해먹어봤다는 소식이 전해지곤 했다. (10명중 2명 정도..?)

그 중 오랜만에 집에서 밥을 먹으려고 반찬가게에 들려 콩자반을 산지 약 3주정도 지났는데 곰팡이가 피지 않았으니 먹어도 되냐는 질문을 하는 친구가 매일매일 해먹었다는 요리가 있는데 그게 바로 채소구이다. 이게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그 친구는 당시에 거의 매일 저녁을 떡볶이를 시켜먹고 있었고, 내가 아무리 쉬운 요리를 가지고 와도 절대 해먹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매일 저녁 물리도록 해먹었다니 뿌듯함이 말할 수가 없더라.

재료는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 야채(시중에 가장 많이 보이고 저렴한 채소는 무엇이든)가 전부다. 구할 수 있다면 로즈마리 또는 타임을 넣어도 향기가 참 좋지만 없다면 생략해도 무방하지만 마음에 드는 허브를 골라 한번쯤 넣어서 먹어보길 추천한다. 개인 취향일 수 있지만 허브를 넣고 오븐에 채소들을 굽고 있노라면 금세 기분 좋은 향이 스윽 하고 피어난다.

퇴근 후 무거워진 머릿속은 요리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가벼워진다. 같이 먹어줄 옆지기의 반응을 기대하며 즐겁게 준비한다.

사실 음식을 준비하면 많이 예민해진다. 이상과 다른 주방에서 도구들과 재료들을 요리죠리 옮겨가며 한다. 혹시 재료를 넣는 타이밍을 놓치기라도 할까봐 노심초사하며 요리를 하니 옆지기는 나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다. 음식이 완성되면 찬사를 아낌없이 퍼부어주고 그릇도 싹싹 비우며 뒷정리도 도맡아 해준다. 나는 즐거운데 그에게는 조금 힘든 일일 수도 있겠다. (이 얘기를 꼭 써달라고 부탁했다...)

물컹거리는 채소는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구워서 먹게 되면 수분이 어느 정도 날아가고 적당히 아삭한 식감도 살고 토마토 특유의 달큰함이 배가된다.

생으로 먹는 채소보다, 살짝 익혀 먹으면 수용성 비타민뿐 아니라 지용성 비타민까지 먹을 수 있어서 채소의 영양분을 온전히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마음 같아선 하이볼을 한잔 시원하게 말아 곁들여 먹고 싶지만 신변의 변화로 인해 내 욕구는 옆지기가 대신하여 고창여행에서 구매한 복분자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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