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4. 이야기를 잇는 상점 열세 번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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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전 우리는 망원동으로 이사했다. 익숙함을 떠나 새로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매일 걷던 거리, 매일 들렀던 장소를 새로 만드려는 시도는 설렘과 어색함을 동반했다. 지금도 이 곳이 우리동네가 맞나, 착각에 빠져 있기도 하다. 그만큼 정릉동에서의 생활은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특히 로이에 대한 환대의 손길들은 정말 소중했다. 그렇게 소중한 기억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고 있어서 그 순간들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글에서는 정릉동에서 만난 환대의 공간에서 쌓인 추억과 함께 대부분 반려견 동반 가능한 곳이기에 각 공간의 정보도 함께 기록하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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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덴코
위치 : 서울 성북구 솔샘로18길 58
영업시간 : 9시~18시
정릉동에서 산책한지 3개월쯤 지났을때, 브래덴코가 오픈을 했다. 한 7~8평쯤 되는 커피숍이다. 브래덴코가 2호 제과명장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인데, 빵을 가게에서 직접 굽는다. 산책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카페에 로이를 잠깐 주차해놓고 커피를 사러 들어갔다(로이의 털 때문에 빵을 굽는 매장 안으로 들어갈 엄두는 못냈다).
로이와 함께 테라스에서 커피를 먹어도 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는데 괜찮다며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사촌 자매가 근무했는데, 그 중 동생분이 고양이를 키워 동물에 대한 적개심은 전혀 없었다. 그날부터 매일 카페로 출근을 했는데, 동생사장님이 간식을 사두고 몇개씩 줄 정도로 로이를 좋아해줬다. 나와 로이는 매일 오전 8시경, 그리고 오후 9~10시경 산책을 해서 오전에만 들를 수 있었다. 저녁 산책 때 문닫은 브래덴코 앞을 지날때면, 또 간식을 얻어먹고 싶은 로이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목줄이 꽉 조여질때까지 땡겨야 발걸음을 움직였고,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 봤을때 강아지 학대범으로 보일 것 같아 발걸음을 서둘렀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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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덴코는 남자직원까지 세명이 근무를 했는데 각자 로이에게 하는 행동패턴이 달랐다. 언니 분은 지금까지도 항상 먼저 로이 간식줘도 되는지 물어봤고, ‘기다려’같은 개인기를 시키면서 간식을 줬다. 동생 분은 브이, 코, 손 등 다른 개인기를 시켜봤고, 시간이 좀 흐른 뒤에는 멀리서 ‘먹어’ 하면서 던져주면 로이가 받아먹는 개인기를 보여줬다. 남자직원 분은 로이를 잘 쓰다듬어줘서 곁을 잘 내주지 않는 로이가 배를 보이면서 계속 쓰다듬으라는 제스쳐를 보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동생분이 항상 물을 줬는데, 로이가 물을 다 먹고서 플라스틱 물 그릇을 입에 물고 동생 분에게 갖다준 적이 있다. 그게 너무 기특해서 물 그릇을 가져오면 간식을 주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한 신호 없이도 물을 다 마시면 동생 분에게 물그릇을 가져다줬다. 다른 두 분에게는 거의 보여주지 않은 개인기. 개인기 또한 사람을 가려가면서 하는 것을 보니 참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강아지인건데, 혹자는 잔머리 굴리는 게 주인하고 비슷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건 좀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어찌됐든 큰 외형조차 비슷하니 어쩌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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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보로는 괜찮잖아?
정릉은 동네 특성상 어르신들이 많은데 카페 손님들도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어떤 우아한 할머니 한 분은 로이를 볼 때마다 “소보로는 괜찮잖아?”라며 본인이 먹던 소보로빵을 조금 떼서 간식으로 주시기도 하고, 어떤 할머니는 간식을 꺼내 주시기도 했다. 아침 산책하면서 카페에 들러 2~30분씩 앉아서 로이는 간식을 얻어먹고 나는 아샷추를 한잔 때리고 오는게 우리의 루틴이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사장님과는 마을 운동, 동네살리기 등 진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로이 덕분에 사람들과 친해져 브래댄코가 마치 정릉의 살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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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앞 보수공사 중이셨는데 로이가 발자국을 내버렸다. 사장님이 귀엽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단골 할아버지들이 그새 다듬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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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이네 감자탕
위치 : 서울 성북구 보국문로20길 18
영업시간 : 11시~24시
특이점 : 사장님들이 강아지를 많이 좋아함
#얘가 우리 지켜주려고 했어요.
처음 사장님을 만난 것은 매우 추운 어느 겨울날이었다. 롱패딩을 꽁꽁 싸매고 로이랑 산책하는데 마침 감자탕 집 옆을 지나게 되었다. 사장님도 로이가 초면이었는데, 반갑게 인사를 해줬다. 그 다음날, 여 느때와 마찬가지로 저녁 산책을 하고 있는데 감자탕집 앞이 시끌시끌한게 멀리서도 보였다. 반려견이나 반려인이나 그런 상황을 지나치는 성격들이 아니라(소문난 오지랖퍼..) 감자탕 집 앞으로 슬쩍 가보았다. 술취한 60대 대여섯명이 가게 배너를 부수고 소란을 피우는 중이었다. 그 중 한 명이 사장님에게 고함을 지르자마자 로이가 ‘웡웡웡웡’ 짖어서 사람들을 쫓아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른 사람들한테 "얘가 우리 지켜주려고 했어요"라고 종종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 다음날부터 자연스럽게 감자탕집을 드나들게 됐고, 사장님들(부부가 운영중)도 로이에게 간식을 주면서 친해졌다. 음식점에 큰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민폐라고 생각한 나는 로이를 절대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한동안은 산책하면서 로이가 감자탕 집 앞을 기웃거리면 두 분 중 한 분이 나와서 로이와 인사하고 간식을 주셨다. 그러다가 손님이 없는 날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에는 손님이 있어도 가게 안으로 로이를 들어오라고 해주셨다. 이내 가게 앞에는 ‘반려견 동반 가능한 식당입니다’라는 문구가 붙게 되었다. 가끔 혼자 밥을 먹으러 가면 로이는 안오냐고 물어보셔서 음식을 시켜놓고 로이를 데려와서 밥을 먹은적도 있고, 또 로이와 같이 들어가 밥을 먹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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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매장입니다(feat. 완이네감자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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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부부는 영업 종료 후 둘이서 때로는 사람들하고 소주 한잔 하는 것을 좋아했고, 술잔을 기울일 때 로이하고 들리면 소주 한잔을 권하시곤 했다. 처음 몇달은 부담스럽기도 하고 로이와 산책을 빨리 마무리하고싶어 거절했었는데,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덥쑥 한잔 얻어먹기 시작하면서 자주 합석하게 됐다. 그때마다 로이는 옆에서 간식을 뭐 하나라도 얻어먹으려고 밥상을 기웃거렸고, 다른 강아지들과는 다르게 밥상을 침범하지 않아 사장님들이 대견해하기도 했고 또 안쓰럽게 생각해 간식 한점을 더 주기도 했다.
#니가 로이구나
로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손님이 있으면 ‘우리 로이 엄청 착하고 개인기도 많아요’라며 반려인인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로이를 어필해주고, 또 직접 개인기도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며 정릉동 마스코트로 만들어줬다. 간식을 먹고 ‘끝’이라고 사인을 보내면 뒤도 안돌아보고 가게를 빠져나가는 로이를 보며 ‘정릉동 양아치’라는 별명도 만들어줬고, 로이가 식당 마스코트라고 엄청 이뻐해줬다. 어떤 손님은 “니가 로이구나”라고 이야기하며 식사하러 들어오기도 했다. 이미 가게 단골들은 전부 로이를 알았고, 로이를 직접 보지 않은 사람들도 ‘정릉 사는 검은 큰 개’라고 하면 감자탕집에 있는 로이로 인식할정도로 그 근방에서 제일가는 인기쟁이였음에 틀림없다.
#로이는 사랑을 많이 받은 티가 나요
사장님은 종종 로이가 사랑을 많이 받은 티가 난다고 이야기했다. 내 말에 껌벅 죽는 모습도 그렇고 매일 거르지않고 아침, 저녁으로 산책을 하니 그렇게 보였을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나보다 로이를 더 사랑해주는듯한 사장님들. 사장님들이 더 사랑해줘서 그런 티가 났을 것인데, 그런 마음들이 로이에겐 잊지 못할 추억들로 남겨졌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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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가게 안으로 입성. 손님들도 예뻐해주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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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펍
위치 : 서울 성북구 보국문로11길 21-20 1층
영업시간 : 16시~1시
#이제 아는사이잖아요
“안주 안시켜도 되니까 산책하다가 맥주만 한잔 먹고 가요. 이제 아는사이잖아요.”
정릉천을 따라 죽 이어진 길은 사람들이 조깅을 하는 곳이기도 하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정릉천 하류 끝자락엔 일명 ‘강아지섬’이라 불리는 모래섬 비슷한 곳이 있어서 강아지 사교의 장이기도 하다. 그 위쪽 길에는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는데 겨울을 뺀 나머지 계절엔 야외가 포장마차 테이블로 가득 찬다. 그 근처를 산책하다가 맥주 한잔이 고파 맨 끄트머리 가게 사장님에게 로이와 함께 야외에서 맥주한잔 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끝자리를 내주셨다. 맥주 한잔 먹고 가는데 사장님이 맥주 한잔만 시켜 먹어도 괜찮으니 언제든지 오라고 이야기를 해주셔서 그 다음부터 친구들이랑 술 한잔 할때면 로이와 함께 브런치펍에 가서 맥주 한잔을 하곤 했다. 어느 날인가 산책을 하는데 야외 테이블에 사람이 너무 많아 그냥 지나쳐가려고 하는데, 로이가 꼭 들러야겠다며 왼발을 가게 안에 턱 올리며 고집을 부렸다. 그것을 본 사장님이 얼마나 오고싶었으면 이러겠냐고, 물이라도 먹고 가라고 물그릇에 물을 가득 채워 내주셨다. 로이와 매일 산책하는 덕분에 아는사이가 점점 늘어났다. ‘이제 아는사이’라는 그 말이 얼마나 정겹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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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시스낵
위치 : 서울 성북구 보국문로16길 74 1층
영업시간 : 11시~21시 (토, 일 휴무)
“순대에 간을 좀 넣었어요. 로이도 같이 먹어요!”
분식을 좋아해서 가끔 떡볶이와 순대를 사러 분식집에 들렀는데, 나중엔 기다리는게 귀찮아서 산책하는동안 전화로 주문하고 픽업해서 집으로 향하기도 했다. 한번은 순대를 주문했는데, 사장님이 “간을 좀 많이 넣었어요. 소금 안들어간거니 로이하고 함께 드세요”라며 주셨다. 로이는 그날 점심을 순대 간으로 배를 채웠다. 또 한번은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들렀던 다른 손님이 갑자기 편의점에 다녀온다더니 강아지 간식을 사서 로이 먹이라며 나에게 건냈다. 이걸 받아야해 말아야해? 순간 고민하다 받았는데, 너무 이뻐서 사주고싶었다고... 순간 깨달았다. 로이는 굶어죽지는 않겠구나. 그리고 이 분식집, 정말 맛있다. 사심없이, 정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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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저녁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실외배변견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날씨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산책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로이도 정릉으로 이사온 뒤 한번, 내가 코로나 백신맞고 뻗었을 때 빼고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을 했다. 비오는 날은 우비를 입고, 눈 오는 날은 작은엄마가 사준 패딩을 입고 산책을 했다. 어느 비오는 날 마침 슈퍼에서 간단하게 장을 봐야 할 일이 생겨서 잠깐 로이를 차양막 아래 묶어뒀는데, 차양막 끄트머리라 로이가 비를 좀 맞고 있었나보다. 장을 보고 나오니 어떤 여자 분이 로이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있었다. 나도 그의 따뜻한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고, 로이도 잠자코 그 환대를 느끼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요. 이거 하나 가지고 가
여느때와 다름없이 로이와 산책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어떤 할머니가 다급하게 부른다.
“저기요! 잠깐만 기다려요”
메고 가던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는데 순간 ‘신종 사이비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막무가내로 나와 로이를 멈춰세웠다. 가방에서 꺼낸 것은 강아지 간식.
“이거 두개만 가지고 가서 먹여요”
나와 로이가 맨날 산책하는것을 보고 간식 하나 주고 싶어서 가방에 항상 가지고 다니셨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로이는 간식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정릉동에서 2년동안 받은 환대는 위 에피소드에 몇십배, 몇백배는 달할 것이다. 사고뭉치 로이가 처음 환대를 받은 기억, 그 환대가 점점 더해져서 단단해지는 그 과정들, 그리고 소중한 추억들. 로이는 잊지 못할 것이다. 로이 덕분에 ‘아는 사이’가 됐던 많은 사람들. 나도 잊지 못할 것이다. 종종 정릉에 들러 그 환대의 마음들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다는 것, 추억거리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는것,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아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 로이로 인해 생긴 이 모든 일들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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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잇는 상점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 이야기들이 담긴 물건을 가끔씩 판매하는 곳입니다.
지금 '이상점'에는 '서로서로', '뜨ㅓ', '사부작 사부작', '개, 장소, 환대', '그 여자가 사제끼는 법' 5개의 이야기가 입점해있고, 매주 각 상점의 이야기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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