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뒤 이런 문자를 받았고….. 나는 위악을 떨며 누구도 이 날을 기념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며 허공에 엄포를 놓았다. 그렇게 너무나도 쉽게 혼인신고를 한 사람이 되었다. 부모님께 절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게다가 아이를 낳을 생각은 더더욱 없다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지랄’을 떨었던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계시는데 어떻게 말할지 눈 앞이 깜깜하긴 하지만…..우리집에서 엄마, 아빠 한정 깡패인 포지션을 맡고 있는 난 또 수치심도 없이 어쩔 수 없었다며, 짐짓 당당하게 말하겠지. 나같은 딸 낳을까봐 무섭다. 절대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신념은 지킨다. 이미 딸이 있기도 하고.(개딸, 로이.. 나 닮아서 쌀쌀맞은 지지배)
비혼주의자로서의 신념과 고뇌, 혼돈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무사히 서울시에서 ‘신혼부부 임차보증금 융자추천서’를 원하는 금액만큼 추천받을 수 있었고, 역시 죽으란 법은 없구나, 어떻게든 해왔던 내 인생, 어떻게든 되긴 되는구나하고 웃으면서 은행에 갔다. 갔는데, 갔는데!!!! 추천서일 뿐 이 금액 전체가 나오는 것은 아니고 개인 신용등급이나 소득에 따라서 실제 대출이 가능한 금액은 다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원하던 90%가 아니라 80%(그것도 200만원 모자란)만 가능하다고 했다………
왜! 왜!!!! 왜!!!!!
혼인신고도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말문이 막힌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거구나. 이미 계약도 했고(계약서를 가져가지 않으면 전세자금대출 불가능) 피같은 계약금을 날리지 않으려면 이 계약이 성사되어야하는데 여전히 모자란 10%를 어디서 구하나…. 카카오뱅크나 토스에서 대출가능금액을 검색하면서 제발 어느 은행이라도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이율이 10%를 훌쩍 넘어갔다. 이자 30만원 덜 내려고 혼인신고까지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될거라면 혼인신고 안했어도 됐는데.. 어떻게..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 글이 내보내지는 지금은 우여곡절 우당탕탕 이사가 끝난 망원동 새 보금자리다. 모자른 10%는 어떻게 했냐고? 다음 편에 계속….
한다고 해도 안물안궁인거 아니까 그냥 실토해 보자면 친구가 빌려줬다. 나에게 그렇게 큰 돈을 흔쾌히 빌려주는 친구가 있었다.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장담할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잘 살았나..? 하고 당황스럽게 자아도취에 빠졌다. (결론 왜 이래?) 나라에서도 포기한(?) 나를… 건져내 준 친구 덕분에 망원 한강공원 걸어서 7분거리, 마포체육센터가 1분거리에 위치한 어느 오래된 빌라 1층에 나와 내 짝꿍, 개딸 로이가 무사히 이사를 왔다.
하지만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다. 전직 운동권이자 전직 인권활동가이자 현직 편집 디자이너인 나는 (이성)신혼부부에게만 허용하는 이 거대한 혜택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정상 나혼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서 서울시 보증서가 없었다면 이마저도 대출 받을 수 없었을 거라고 한다. 이율은 2%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동거가족에도 똑같은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 마침 실사출력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니 현수막과 판넬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보장하라, 보장하라! 동거가족에게도 똑같은 권리를 보장하라! 예비 부부는 혼인신고서 대신 청첩장이나 결혼식장 계약서를 증빙서류로 내야하는데 이것도 마뜩찮다. 결혼식을 올릴 여건이 안되거나 결혼식 자체를 하지 않을 거라면? 넘어야할 산이 많다.
모자란 10%를 위해서 결혼‘식’을 올릴까도 생각해봤다. 기왕 이렇게 된 거….결혼식 진행비용 빼고 순수익(축의금을 이렇게 불손하게 표현해서 죄송합니다..)으로 10%쯤은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결혼식이라는 대참사(!)를 막아준 소중한 나의 친구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2023년은 덜 사제끼고 모으면서 살거라고 그렇게 철썩같이 다짐했는데..샤넬 안경이 너무 예쁘다. 심지어 2개나 예쁘다. 2개 중에 1개는 꼭 갖고싶다. 그치만 난 달라졌다. 신용카드 할부가 아니라 적금 들어서 살거다. 이름하여 샤넬적금! 반드시 만기까지 모으기에 성공해서 착샷을 보여줄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