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2. 이야기가 있는 상점 세번째 이야기 |
|
|
로이랑 나는 지금의 인연들이 킴스카페의 환대로부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로이한테 직접적으로 물어보진 않았지만, 로이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킴스카페에 혼자 가서 작업하곤 했었는데, 수염이 덥수룩한 내 인상과 덩치가 자못 건달 같아서 그런지 사장님들의 경계심이 느껴졌다. 로이랑 친해지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동네에 좋은 손님도 많이 있지만 개중에 막 대하는 손님들이 적잖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사장님들은 손님을 응대하는 것에 피로감을 느꼈던 것 같다. 특히 수염난 덩치 큰 사내가 아담한 자매가 보기엔 처음에는 무서웠을 지 모른다. 그런데 로이랑 같이 다니다보니 사장님들의 경계심이 풀어졌던것 같다. 그 때문에 ‘기린도 환영한다’는 문구를 써 붙여놨는지도 모른다. 그 전단을 보고 조심히 카페 문을 열었던 것이, 대형견이 들어와도 되냐고 물어봤던 용기가, 어쩌면 로이에게는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
|
|
사장님, 여기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
사장님의 격한 환영을 받고는 킴스카페에 거의 매일같이 들렀다. 한번 갈 때마다 적게는 1시간, 많게는 2시간 가까이 커피도 마시고, 작업도 하고, 사장님하고 수다도 떨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장님이 간식을 주면서 친해졌기 때문에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카운터에 발을 올리고 간식 내놓으라는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사장님 로이도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도 주세요’라고 장난을 쳤다. |
|
|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 순간 사장님이 강아지 관련 여러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알게 된 개인기를 로이에게 하나하나 시켜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얼렁뚱땅 간식만 얻어먹으려던 로이는 눈치가 빨라서 얼추 비슷한 동작을 취했다. 그리고 끈질긴 사장님의 훈련 덕분에 앉아, 엎드려, 누워, 기다려, 돌아, 하이파이브, 코, 브이 등 굉장히 많은 개인기를 갖추게 되었다. 아니, 끈질기게 될 때까지 시켰던 것 같다. 스파르타 교육을 한 결과 한 가지 단점이 생겼는데, 눈칫밥으로 개인기를 갖추다 보니 원래 시키던 것 밖에 하지 못한다(누우라는 명령을 하면 오른쪽으로만 눕는다. 왼쪽으로 누워있다가도 오른쪽으로 돌아 눕는다). |
|
|
‘혹시 아까 오셨었어요?’
매일같이 카페에 들리던 개로이는 사장님이 늦게 오픈하거나, 일찍 마감한 뒤 산책할때면 카페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곤 했다. 가자고 아무리 재촉을 해도 동상처럼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한번은 오전에 그렇게 기다리다가 겨우겨우 집에 넣어놓고 오후에 혼자 카페에 나왔는데 아까 기다리지 않았냐며, CCTV로 로이가 기다리는 것을 봤다고, 로이 보려고 빨리 오려고 했는데 병원에서 오느라 늦었다고 사장님은 매우 아쉬워했다. 로이도 아쉬워하고 사장님도 아쉬워하고, 로이는 간식때매 아쉬워하고 사장님은 로이랑 놀지 못해 아쉬워하고, 동상이몽의 상황이었다. |
|
|
정릉 2동 보안관이었던 개로이
킴스커피로부터 시작된 환대는 여러 인연을 만들어줬다. 그곳에서의 산책은 출근 전후 아침, 저녁으로 매일같이 했고 거리를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지나갈 때 마다 손에 들고 있던 간식이라도 주던 카센터 사장님, 집에 놀러 온 친구와 그리고 로이와 함께 소주 한잔 기울일 수 있게 테이블을 흔쾌히 내주던 이자카야 사장님, 전혀 모르던 사이인데 큰 개 주인 아니냐고 물어봐줘서 매일 인사드렸던 파스타집 사장님, 오지랖 넓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gs 슈퍼마켓 점장 아저씨, 산책할 때 만나면 서로 짖어 멀리서만 인사했던 잉글리쉬 쉽독 제이지와 반려인. 그 외 많은 사람들을 산책하는 길거리에서 만나서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나 혼자 살았을 땐 그냥 지나쳤을 것 같은 인연들이 로이를 통해 생겼고, 지금도 계속 생기고 있다. |
|
|
always.spring111@gmail.com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8길 10 골목 첫번째집
|
|
|
|
|